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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마흔에 읽는 니체

파이톨치 2022. 12. 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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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에 읽어보는 니체

 나는 올해 20살이며 곧 21살이 된다. 책 제목은 마흔에 읽는 니체이지만 "마흔에 읽을 것을 스물에 읽으니 엄청난 이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올해 동안 계속해서 누군가 "너는 왜 살아?" 라는 공격적인 질문을 했을 때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를 찾기 위해 고민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답은 무언가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단기적인 목표 혹은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낸 답에 정말 맞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렇게 산다고 해서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서 내가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도 너무나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과분한 목표를 세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목표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너무나 잃는 것이 많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했던 질문을 시지프 신화에 나온 식으로 고급스럽게 변형하면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이다. 이는 곧 삶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책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에서는 고통과 시련을 받는 이 세계의 삶은 단지 신의 시험이고, 그러한 모든 고난은 사후에 천국에서 보상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통과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계는 단지 저 세계인 천국을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사는 이 삶은 고작 수단에 불과한 것인데 나는 여기 동의하기 힘들다. 나는 일단 사후 세계를 믿지 않고 이 대답이 근본적으로 내가 지금 여기에서 왜 살아있는지에 대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냥 사후세계로 떠넘기는 느낌이 든다. 

 

 니체는 내가 하는 이러한 질문이 허무주의라고 한다. 허무주의에 빠져 목표가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에 대한 대답이 빠져있다고 한다. 나는 내 목표에 의구심을 가졌고 목표가 흐릿해졌다. 그냥 저냥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내 삶은 점점 무기력해져갔다. 다행이도 이러한 권태기는 위기가 아니라 전환기라고 한다. 자기 삶의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동력을 얻는 때라고 한다. 이러한 권태는 얼어붙은 삶의 의지를 녹일 봄 바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권태로운 상태를 견디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고통스로운 삶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르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 나아가라고 한다. 

 

##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니체는 초인이 되라고 한다. 하지만 초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타고난 초인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사람은 태어나기를 멍청하게 태어난다. 나는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 패달을 밟지도 않으면서 왜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지 몰랐다. 나는 어렸을 때 카드에서 돈이 무한히 나오는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멍청하다. 그냥 태어나서 아무 생각도 없이 어머니가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시간을 낭비하다 잘 시간이 되면 자는 삶을 살았다. 생각하는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의심하고 잘 관찰해보니 자전거는 에너지의 전환이 일어나야 앞으로 나아간다. 카드를 긁으면 인터넷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내가 살아가는 삶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 나는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정확히는 나답게 사는게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 성공한 삶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은 아니다. 나의 삶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의심하고 고민해봐야 발전할 것이고 좀 더 정답에 가까워 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물리학을 하기 위해서 뉴턴의 법칙을 배우듯이) 인생을 잘 살기 위해 니체와 같은 사람의 사상을 컨닝을 해보려고 한다.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을 존중하라고 한다. 자기 자신에게 경외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말이다.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 준다 하더라고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

 

 나는 사실 나를 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의 장점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 항상 무언가를 할 때마다 잘 할 자신이 없어서 불안했다. 시험을 볼 때도 불안하고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내가 실수한게 없는지 불안했다. 나는 말을 잘하거나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려고 하지도 말고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 사람 인생은 그 사람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나만의 인생이니까 나를 좀 더 소중히 여기라고 한다. 내가 생각할 것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 운명애,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

 운명애는 다른 말로 아모르파티이다. 김연자라는 가수 분의 노래가 생각난다. 니체의 운명애는 "앞으로 삶에서 내게 근거와 보증과 달콤함이 될 생각"이라고 한다. 니체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라고 말한다. 즉,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라고 한다. 삶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어도 주어진 길을 담담히 걸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말만 들어도 쉽지 않다.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탓이라는 것이다. 내가 시험을 망쳤으면 더 열심히 하지 않은 나의 탓이고 내가 시험에서 실수를 했으면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탓이다. 때문에 나는 더욱 더 노력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가만히 있어서 "뭐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지" 하라는 소리인가..? 나는 그런 패배에 찌든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니체가 말하는 운명애는 숙명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니체는 너 자신을 원하라고 한다. 그러면 그것이 너 자신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니체는 열정맨이 되라고 한다. 열정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농구를 하면서 헥헥 되면서도 계속해서 뛰는 것이 열정이다. 고통이 있지만 그 속에서 기쁨이 함께 있는 것이 열정이다. 나는 이 열정을 잃어서 허무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내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열정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렇네... 나는 지금 딱히 중요한게 없어서 그랬구나...) 나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기 보다는 앞으로 삶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가져야할 것이다. 

 

 니체는 "후회는 어리석음에 또 다른 어리석음을 더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게 훨씬 이득이다. 니체는 정신 승리의 왕이다. 이렇게 후회스러운 일들도 지나고 보면 내가 위기와 곤경에 빠졌던 순간이 큰 축복을 받기 위한 과정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과거를 받아들여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망해서 확인하고 있지 않던 점수를 확인 해 봤는데 뭐 그렇게 망하지는 않았다! 다른 과목들도 망했어도 괜찮다 받아들이고 다음 학기에는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 영원을 넘어 지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꽃 피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새로이 이어진다. 존재의 동일한 집이 영원히 세워진다. 

 

 

위의 말은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을 담고 있는 말이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는 똑같은 순서 맥락으로 모든 것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영원히 굴러가는 수레바퀴는 이런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매 순간 과거와 미래를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무한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이 삶을 정말 사랑한다면, 운명을 사랑한다면 상관 없다고 답할 것이다. 또한 나의 운명은 이 순간에 존재할 때 살아 움직인다고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 나의 영혼이여. 
제 그 어디에도 이보다 더 사랑에 넘치고 더 넓고 광대한 영혼은 없을 것이다! 
미래와 과거가 그대에게서처럼 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 인생 초반이라 "아직 젊으니까 괜찮지 않아?" 하면서 넘길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매 순간을 열정을 다해 살아 야 한다. 영원히 반복되는 삶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낭비 하면 결국 다음번의 삶에서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니까 말이다!! 내가 삶을 포기하면 다음번에도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최고로 행복하게 산다면!! 나는 영원히 반복되는 삶에서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산다면, 나는 무한하게 반복되는 삶에서 살 수 있냐는 질문에 YES라고 답할 것이다. 

 

영원회귀 사상이 맞냐 틀리냐가 중요하기 보다는 고통스러운 삶이 끝없이 되풀이 되더라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삶을 최고로 긍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영원 회귀 사상은 하나의 사상적 실험으로 괴로운 이 삶을 포기할 것인지, 괴로운 삶에 다시 한 번 최고의 의미를 부여하여 극복할 것인지 선택할 것인지 요구한다고 한다. 후자의 삶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삶이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이를 받아들이자. 지치지 않고 '다시 한 번'을 외치자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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